조선 세조 13년(1467년)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사 정문인 홍예문의 성문과 축성 석재로 이용하기 위해 정으로 쪼아 홈을 내어(일명 장사발자국)그 곳에 마른 참나무를 박고 몇일을 물을 부어 나무를 부풀게 하여 바위가 터져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바위 아들 삼형제가 멀리 앞바다에서 증증 울면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석수장이와 지휘를 했던 사람이 피를 흘리며 화를 입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더 이상 바위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삼형제 바위는 바다쪽으로 100m 앞에 위치해 있으며, 이때부터 마을 이름을 쇠정(釘)자에 바위암(巖)자를 써서 정암리라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1863년 고종황제때 건립되어 내려오던 중 2005년 4월 5일 양양지역의 큰 산불로 전소된 것을 마을의 단양장씨(張氏) 문중에서 다시 복원하였다.

충렬각은 단양장씨 문중의 장도원(張道元)의 정부인 경주(慶州) 김씨(金氏)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주었다.

고종 때 대행대비가 승하하여 국상이 나자 온동네 사람들이 곡을 하고 애도하는 가운데 경주 김씨는 국상 기간이 끝난 후에도 어육(魚肉)을 먹지 않고 매월 보름과 그믐에 정화수를 떠놓고 서쪽을 향해 절을 하고 곡을 했다. 이러던 중 낙상을 하여 크게 다쳐 누었으나 꿈에 자칭 국사인(國使人)이라는 선인이 나타나 영약을 주기에 먹었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아픈 것이 가셨다. 경주김씨의 간절한 추모의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 여긴 유림들이 나라에 청하여 충렬각을 짓도록 하였다.

충렬각에는 장도원의 정부인 경주김씨의 충렬을 기리는 충렬비(忠烈碑)가 모셔져 있다.